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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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미용실·부동산중개업소 ‘마을상담소’로 변신

2015-10-01
조회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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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번씩 죽을까 생각해요. 안된다는 거 알면서도 그래요. 겉으로는 쾌활해 보이죠? 남들 보기에는 가정도 행복해요. 남편하고도 별 문제 없고….”


서대문구 미장원과 복덕방이 마을상담소로 바뀌었다. 자살예방 지킴이 교육을 받은 업주들이 마음 치유사로 나선다. 연희동 마을상담소에서 배정분 원장과 정미옥씨 등 주민들이 속내를 털어놓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정미옥(56)씨의 마음을 다독이는 건 인근 미용실 배정분(65) 원장이다. 배 원장이 대신 정씨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 전 오빠가 세상을 뜨면서 병석에 누운 어머니에게 아들노릇을 하느라 지쳐있다고. 배 원장은 “최근에는 더 외롭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머리 나중에 하라’고 하고 같이 수안보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미장원과 부동산중개업소가 마음이 황폐해진 이들을 붙잡아주는 ‘마을상담소’로 변신했다. 주민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내 협력체계 구축 사업 일환이다. 미용업소 34곳과 부동산 중개업소 69곳까지 총 103개 업소가 마을상담소 현판을 달고 ‘상담 반 영업 반’ 주민들을 만난다. 지난해 2월 공인중개사와 미용사를 대상으로 자살예방 지킴이 전문교육을 실시한 뒤 마을상담원으로 위촉했다.

 

배정분씨는 죽음으로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던 아픔이 있어 선뜻 마을상담사에 응한 경우. 4년 전 친한 친구 가족과 깊은 불화를 겪으면서 3개월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미용실 문을 닫은 저녁시간이면 집 근처 홍제천에서 영등포구 양화동 선유도공원까지 걸으며 분을 삭였다. 양화대교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배씨는 “마음만 조금 바꾸면 되는데 그게 안돼서 쌓아두니 폭발하는 것”이라며 “자살예방 지킴이 교육을 받는데 교육내용이 바로 와닿았다”고 돌이켰다.

 

당초 미용사 4명이 마을상담원 교육을 신청했는데 배 원장만 교육을 마치고 마을상담소 현판까지 달았다. 방문객들은 그가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자연스레 부부간 다툼이나 자녀와의 불화를 털어놓는다. 특히 퍼머를 하는 경우 대기시간이 길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다보니 미용실에서 위안을 얻는 건 정미옥씨 뿐만이 아니다. 인근에 사는 김 모(48)씨는 6개월 전 연희동에 이사한 이후 배씨 단골이 됐다. 심각한 직장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병원 치료와 친구들과의 대화를 병행한지 6개월여 되던 때였다. 김씨는 “마음이 우울해져서 머리모양이나 바꿀까 하고 미용실을 찾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 걱정을 해주는 것 같았다”며 “초면에 깊이있는 질문을 던져서 의아했는데 마을상담소 현판이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특별히 머리 다듬을 일이 없어도 방문해 대화를 나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웃는다”며 “마음이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마을상담원들은 말문을 튼 고객과 ‘이웃사촌 맺기’를 통해 자살고위험군을 찾아내 최대 5명까지 결연을 맺고 관리를 한다. 동시에 보건소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개입해 전문상담을 한다. 그렇게 발굴한 고위험군만 103명. 단순 고민상담 1만3500명, 마을사랑방으로 활용한 주민 3만900명, 마음 휴식처로 이용하는 주민 2만600명 등 성과도 있다. 구는 마을상담원 활동사항을 표준화 전산화하는 한편 상담소가 구와 함께 사업을 하는 업소임을 알려 영업에 도움이 되도록 지원한다.

 

지역사회기반 자살예방사업의 또다른 축은 쪽방촌과 고시원이 밀집한 신촌동 집중관리. 무허가건물과 고시원 126곳이 밀집된 지역인데 4개 마을상담소와 함께 현황파악부터 했다. 고시원에는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쪽지를 남겼고 쪽방촌 노인 등은 실거주자를 파악해 우울·자살생각 척도검사를 진행했다. 검사결과 4명은 중증으로, 1명은 중증우울로 분석돼 전문기관과 연계했다.
서대문구는 이밖에 노인대학과 경로당 대상 마음건강과정, 서울시 주최 치유과정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운영 등 자살예방 주민협력체계를 강화해가고 있다. 눈에 띄는 성과도 있다. 2012년 인구 1000명당 25.9명에 달하던 자살률이 2013년 25.6명으로 정체 상태였는데 지난해에는 서울시 가집계 결과 17.39명으로 대폭 줄었다. 문석진 구청장은 “미용실과 부동산은 주민들 사랑방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라며 “미용사 부동산중개사는 발이 넓어 동네 정보에도 환하고 마을상담원에는 제격”이라고 말했다.

 

 

 기사 원문 보러가기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67527